‘수명 연장’ 장기이식…왜 돼지가 주인공인가

한국에서도 팬층이 두터운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의 소설 ‘아버지들의 아버지’는 인류의 기원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담았다.

소설은 ‘최초의 인간’이라 불리는 ‘잃어버린 고리(미싱 링크)’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한 고생물학자가 살해당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사건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주간지 여기자와 전직 기자, ‘잃어버린 고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학계 내부의 갈등, 이상한 원숭이의 출현과 돼지고기 가공업체 여사장의 납치 사건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장기 구조·기능 사람과 가장 닮아

장기 이식 돼지와 의료진. 케티이미지뱅크
장기 이식 돼지와 의료진. 케티이미지뱅크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 중에서도 이 소설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돼지와의 교배와 인류의 탄생’에 있다. 영장류인 아담과 돼지인 이브 사이에 태어난 카인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지만 단순히 소설적 상상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오래전부터 돼지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었다. 고대와 중세 의학에서 이미 돼지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선 인체 해부를 돼지로 대신했다. 죽은 시신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의 몸에 칼을 대는 게 금기시되던 시절이다. 장기 구조와 기능이 사람과 가장 유사한 동물이 돼지라고 여긴 것이다.

2세기 로마 시대의 의학자 갈레노스(Galenos)는 고대 인체생리학의 체계를 수립한 인물로 유명하다. 1500년대까지 명맥을 유지한 그의 해부학도 돼지를 이용해 정립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장기 결정 유전자 95% 유사

미니 돼지와 인간 장기의 유사성. 옵티팜
미니 돼지와 인간 장기의 유사성. 옵티팜

현대 의학에서도 돼지의 위상은 대단하다. 돼지를 대상으로 한 장기이식용 동물복제 실험은 지금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유는 역시 사람과 돼지의 유전자가 닮았기 때문이다.

2012년 국제 컨소시엄 연구진은 ‘돼지 유전체 지도’를 완성했다. 이에 따르면 조직과 장기 모양을 결정하는 유전자 경우 사람과 돼지가 95%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만·당뇨는 물론 파키슨병·알츠하이머병 등 각종 질병의 유전변이도 마찬가지다. 네이처에 실린 돼지 유전체 지도 발표 논문에는 ‘사람과 돼지는 8000만 년 전 공통 조상에서 갈라졌다’고 돼 있다.

유전자 변형으로 더 인간에 가까워진 돼지

미국에서 돼지 신장을 살아있는 사람에게 이식한 세계 최초의 사례가 나왔다. 의료진이 이식 수술에 쓰인 돼지 신장을 꺼내고 있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미국에서 돼지 신장을 살아있는 사람에게 이식한 세계 최초의 사례가 나왔다. 의료진이 이식 수술에 쓰인 돼지 신장을 꺼내고 있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돼지의 몸에서 사람의 장기를 길러 이식하는 기술은 지금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2022년 1월 유전자 변형 돼지 심장을 중환자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환자는 뇌사자였고 두 달 후 사망했다.

2024년 3월에는 사상 처음으로 돼지 신장을 살아있는 사람에게 이식하는 수술이 진행됐다. 만성 신장병 환자가 4시간에 걸친 돼지 신장이식 수술을 받고 회복에 들어간 것이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환자에 비해 장기 기증자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유전자 변형으로 더 인간화한 돼지는 소설 속 주인공으로만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