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얼굴’ 배우 천우희…소름 돋는 연기 BEST 5
매번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연기해야 하는 배우에게 ‘천의 얼굴’이라는 수식어는 어떤 칭찬보다 듣기 좋은 말일 것이다.
천우희는 이 표현에 걸맞는 몇 안 되는 배우 중 한명이다. 2004년 로맨틱 코미디 ‘신부수업’에 단역으로 출연한 그는 이후 10여년간 단역과 조연을 오갔다.
그러다 2014년 주연을 맡은 ‘한공주’가 말 그대로 사고를 제대로 쳤다. 저예산 독립영화의 한계를 뛰어넘어 각종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았다.
특히 한공주 역을 맡은 천우희의 연기에 관객은 물론 평론가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는 이 영화로 청룡영화상에서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연기력은 물론 스타성까지 인정받은 배우지만 수상 이후에도 평탄한 길을 걷지 않았다. 인기 여배우라면 왠지 꺼릴 것만 같은 역할을 원래 내 것인 마냥 찾아 나섰다. 그리고 미친 듯 열연을 펼쳤다.
■ 써니 (Sunny·2011)
데뷔작 ‘과속스캔들’(2008)의 흥행돌풍으로 주목받았던 강형철 감독의 차기작. 이 영화 역시 745만명의 관객을 이끌며 빅히트를 쳤다.
어린 나미 역을 맡은 심은경의 신들린 듯한 연기가 가장 눈에 띄지만, 회상신 몇 장면에 등장하는 이른바 ‘본드걸’의 미친 듯한 연기는 오랫동안 뇌리에 남는다.
과거 써니 멤버였지만 환각제인 본드를 해서 쫓겨난 상미. 학교 식당에서 보여준 ‘원맨쇼’는 소름 끼치도록 강렬하다. 실제 이 장면을 촬영하면서 상대역이던 심은경은 공포심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에는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천우희라는 배우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영화다. 한편으로 이 배우가 다음에는 어떤 연기를 펼칠지 기대하게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 한공주 (Han Gong-ju·2014)
이수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만든 영화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온 사건으로 영화 역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저예산 독립영화로 제작진과 배우들이 똘똘 뭉쳐 힘들게 만들었다. 힘들었던 만큼 좋은 평가가 줄을 이었다. 세계적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극찬할 정도였다.
이 감독은 이 영화로 청룡영화제에서 평생 한 번밖에 받지 못하는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주연을 맡은 천우희 역시 배우로서 큰 전환점을 맞게 한 작품이다.
천우회는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작은 영화에 유명하지 않은 제가 이렇게 큰 상을 받다니…”라며 눈물을 보였지만, 대중의 반응은 “받을 사람이 받았다”는 거였다.
■ 곡성 (THE WAILING·2016)
긴박감 넘치는 스릴러 ‘추격자’로 단숨에 흥행 마스터로 떠오른 나홍진 감독이 강렬한 미스터리 오컬트물로 내놓은 영화.
나 감독은 ‘추격자’(2008) ‘황해’(2010)에 이어 ‘곡성’(2016)으로 세 번이나 칸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음습하다. 보는 내내 손바닥이 끈적거린다. 갑자기 아파지기 시작한 효진의 아빠 전종구(곽도원)와 효진을 구하기 위해 마을을 찾은 일광(황정민), 일본에서 온 미스터리 외지인(쿠니무라 준).
천우희는 연쇄살인사건 현장에 소리 소문 없이 나타나 주변을 맴도는 미스터리한 여성 무명 역을 맡아 어느 때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 우상 (Idol·2019)
영화 ‘한공주’로 극찬을 받은 이수진 감독의 차기작. 관록의 배우 한석규와 설경구가 주연을 맡은 스릴러 영화다. ‘한공주’ 돌풍의 주역 천우희가 이 감독과 함께한 두 번째 작품이다.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은 도의원 구명회(한석규). 차기 도지사로 주목받고 있는 그의 아들이 교통사고를 낸 후 이를 은폐한 사실을 알고 자수시킨다.
목숨 같은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이한 유중식(설경구)은 사고 당일 아들과 함께 있다 사라진 며느리 최련화(천우희)를 찾아 나선다.
연기처럼 사라진 조선족 며느리에게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다. 천우희는 뱃속에 아이를 품은 채 오직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최련화 그 자체를 보여줬다.
■ 앵커 (Anchor·2022)
‘봄에 피어나다’(2018) ‘소년병’(2013) ‘감기’(2014) 등 단편영화로 각종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던 정지연 감독이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첫발을 내딛은 작품.
천우회는 유독 장편 데뷔 감독과 인연이 깊다. 또 스릴러 장르에 자주 출연했다.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인 방송국 간판 앵커 정세라 역을 맡아 소름끼치는 연기를 선보인다.
엄마 이소정 역을 맡은 이혜영도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다. 애증을 넘나드는 모녀의 모습이 영화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한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영화 후반 반전이 펼쳐진다. 물론 스릴러물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미리 알아차렸을 법하다. 하지만 알고도 놀라는 게 이런 영화의 미덕이다. 그만큼 천우희의 연기가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