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말론 브란도 배우 박중훈의 스무살 청춘일기
‘이 배우 누구지? 사고 크게 치겠는데….’
첫인상부터 강렬했다. 스무살 청년 박중훈은 첫 영화 <깜보>에서 타고난 끼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인상적인 연기력을 선보였다. 뉴욕에서 연기를 공부한 장두이의 카리스마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서울 아시안게임이 열린 1986년 개봉한 <깜보>는 내용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출연 배우들로 인해 뒤늦게 화제가 된 영화다. 박중훈과 함께 김혜수가 불량소녀 역으로 영화에 첫 출연했다. 당시 16세 학생이었다. 참고로 이 영화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다. 극장에 몰래 들어가 봤던 기억이 난다.
박중훈과 김혜수는 <깜보>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을 수상했다.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옛말 그대로다. 떡잎부터 달랐던 두 배우는 40년 가까이 한국 영화계를 이끌고 있다. 물론 부침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긴 세월 동안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청춘물로 스타덤…사회성 짙은 영화에도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난 박중훈은 용산고 재학 시절 연극부에 들어가면서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다니던 1986년 <깜보>로 데뷔했고, 이듬해 이규형 감독의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에서 강수연과 호흡을 맞추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2020년 별세한 이규형 감독은 1980년대 ‘청춘문화’를 대표한 인물이다. 1986년 <靑 블루 스케치>로 데뷔했다. 천호진과 조민수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젊은 청춘의 고뇌와 갈망, 그리고 사랑을 때로는 발랄하게 때로는 우울하게 잘 담았다.
박중훈은 오랜 기간 배우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첫 영화의 잔상이 강해서인지 코미디 영화에 잘 어울린다는 선입견도 있었지만, <칠수와 만수>(1988) <그들도 우리처럼>(1990) <우묵배미의 사랑>(1990) 등 사회성 짙은 영화에 잇따라 출연했다.
뛰어난 연기력에 소탈한 성격까지 안성기와 찰떡궁합
박광수 감독의 <칠수와 만수>는 안성기-박중훈 명콤비의 탄생을 알린 영화다. 뛰어난 연기력에 소탈한 성격까지 찰떡궁합을 자랑한 두 배우는 이후 <투캅스>(1993)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라디오 스타>(2006)에서 호흡을 맞추며 식지 않은 우애를 과시했다.
1990년대 최고 스타로 떠오른 최진실과 부부로 출연한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 <마누라 죽이기>(1994) 등에서 코믹 연기를 선보인 그가 웃음기 싹 빼고 찍은 영화가 있다. 장현수 감독의 <게임의 법칙>(1994)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극장가를 휩쓸었던 홍콩 느와르의 인기가 사그라들 무렵 한국판 느와르 한 편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왕가위 감독의 <열혈남아>(1987)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찌감치 할리우드에 진출, 특급 배우들과 열연
박중훈·오연수의 연기력은 유덕화·장만옥 못지않았고 애절함과 비장함을 잘 표현했다. 특히 주인공 용대(박중훈)가 공중전화박스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은 1990년대 한국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라고 할 만하다.
박중훈은 1990년대 후반 미국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아메리칸 드래곤>(American Dragons, 1997)에서는 크게 주목 받지 못했지만 조나단 드미 감독의 <찰리의 진실>(The Truth About Charlie, 2002)에서 비중 있는 조연을 맡아 팀 로빈스, 마크 월버그 등 할리우드 특급 배우들과 열연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