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부호] 흙수저 물고 태어나 한국 최고 부자 된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어린 시절 그의 삶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전남 담양에서 상경한 부모 아래서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할머니를 비롯한 여덟 식구가 단칸방에서 살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중학교 다닐 때 사정이 좀 나아졌다. 아버지가 정육 도매업으로 자리를 잡은 덕이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아버지의 사업은 몇 년 지나지 않아 부도가 났고, 가정 형편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는 흔히 말하는 흙수저 출신이다. 유년과 학창 시절을 어렵게 보냈다. 1986년 서울대 산업공학과에 입학하기 전 재수 시절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손가락을 베어 혈서를 쓸 정도로 독하게 공부했다고 한다.

한국 최고 부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제치고 1위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카카오 캐릭터 라이언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카오 나우 브런치)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카카오 캐릭터 라이언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카오 나우 브런치)

그런 그가 대한민국 최고 부자 자리에 올랐다. 2022년 포브스가 선정한 한국 50대 부자(Korea’s 50 Richest People) 순위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김 창업자의 재산이 96억 달러(11조9000억원), 이 회장 재산이 92억 달러로 집계됐다.

그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1992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산업공학 석사 학위를 받고 삼성데이타시스템(현 삼성SDS)에 입사한 그는 회사를 다니면서 전국 최대 규모의 PC방을 부업으로 운영했다.

때마침 기회가 왔다. 1990년대 말 온라인 게임과 PC방 열풍이 불자 고스톱·포커와 웹보드 게임을 서비스 하는 한게임을 설립해 공전의 히트를 친 것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0년에는 빅딜을 성사시켰다. 삼성SDS 동기였던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의 네이버와 합병해 NHN 공동대표를 맡은 그는 NHN을 포털 업계 부동의 1위로 키웠다.

질주하는 성공신화, 기부에도 적극 나서

그러던 중 또 한 번 도전에 나선다. NHN 단독대표를 거쳐 해외사업을 총괄하던 그는 2007년 대표직을 던져버리고 돌연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 IT 업계 대표주자의 예상치 못한 과감한 선택에 이런저런 뒷말이 나돌았다. 한게임부터 NHN까지 성공신화를 쓴 그의 질주가 멈추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2010년 애플의 아이폰을 보고 향후 모바일 대전환기를 예측한 그가 귀국 후 선보인 게 바로 카카오톡이다.

카카오톡은 짧은 시간에 우리 삶 속으로 파고들어 국민 메신저로 자라집았다. 2015년 다음커뮤니케이션을 합병한 카카오는 4년 뒤 대기업 지위에 올랐다.

단칸방에서 여덟 식구가 함께 살던, 혈서까지 쓰면서 독하게 공부하던 그가 100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의 오너가 된 것이다.

어려운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는 적극적인 기부자로도 유명하다. 이미 재산 절반을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한다고 밝혔고 이를 실행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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