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월드스타’ 강수연의 인생영화…여우주연상 수상한 영화 5편

넷플릭스 영화 <정이>가 유작이 된 배우 강수연의 영화인생은 화려했다. ‘원조 월드스타’라고 할 수 있는 강수연은 2022년 5월 7일 유명을 달리했다. 후시녹음까지 모두 마치고 얼마 뒤 세상을 떠나 오랜만의 복귀작을 보지는 못했다.

아역 배우 출신인 강수연은 1980년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임권택 감독과 함께 한 <씨받이>와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베니스영화제와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렸다.

국내에서도 영화상을 휩쓸었다.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세 차례 수상했다. 또 <경마장 가는 길>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한동안 배우로서 영화에 자주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1991년 모스크바영화제와 1998년 도쿄국제영화제 심사위원을 맡는 등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활약을 펼쳤다.

특히 부산국제영화제와 인연이 깊다. 1998년 제3회 집행위원을 시작으로 제5회와 제14회에서 심사위원을 맡았고, 제21·22회에서는 집행위원장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이끌었다.

■ 씨받이 (The Surrogate Womb·1986)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

강수연 주연 영화 <씨받이>
영화 <씨받이>

배우 강수연의 영화인생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한국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이다. 임 감독의 영화를 일일이 거론하자면 한도끝도 없다.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한 이래 100편이 넘는 작품을 쏟아냈다.

대종상영화제 감독상 5번, 청룡영화상 감독상 3번, 그리고 <취화선>(2002)으로 칸영화제 감독상까지 거머쥐었다. 강수연이 세계 4대 영화제에 속하는 베니스영화제와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두 영화도 임 감독 작품이다.

영화 <씨받이>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유린당한 한 여성의 이야기로 단순한 스토리지만 세세한 감정선이 살아있다. 조선시대 대가집 종손이 아이를 못 갖자 부인 대신 아이를 낳아줄 씨받이로 선택된 옥녀(강수연). 빼어난 미모로 종손의 총애를 받지만 결국 아이를 낳자마자 쫓겨나 목을 맨 채 죽음을 맞이한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했었다. 역시 강수연이 주연을 맡은 <감자>(1987)와 조용원 주연의 <땡볕>(1985)을 봤을 때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모두 시대극이다. 우리 역사에서 여성, 특히 신분이 낮거나 가난한 여성의 삶에는 아픔이 더 배여 있다.

■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We Are Going to Geneva Now·1987)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

강수연 이영하 주연 영화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영화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월남전 참전용사를 통해 전쟁이 인간의 정신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지 보여준 영화. 이영하가 월남전 참전용사 필운역을, 강수연이 열차에서 필운을 만나는 창녀 순나역을 맡았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가정과 사회를 등지고 완행열차에 오른 필운, 옆자리에 앉은 순나는 평생 모은 돈을 건달 승호(정승호)가 가지고 도망가자 자살을 기도한다. 필운은 순나를 병원으로 옮기고 떠나지만 우연히 다시 만나 서로 연민을 느낀다. 26회 대종상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음악효과상을 받았다.

■ 아제아제 바라아제 (Come, Come, Come Upward·1989) 모스크바영화제·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

강수연 주연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

임권택 감독과 배우 강수연이 또 한 번 전 세계에 한국 영화를 알린 작품이다.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반야심경의 마지막 구절이다. 음으로 읽기만 하고 번역을 하지는 않는데, 굳이 번역한다면 ‘가자, 가자, 저 피안의 세계로 가자. 모두 함께 저 피안의 세계로 가자. 오, 깨달음이여, 축복이어라’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한승원 작가의 동명 소설을 작가가 직접 각색해 영화의 깊이를 더했다. 한 작가의 소설 중 2014년 발간한 ‘사람의 맨발’이 마지막 읽은 작품으로 기억된다. 싯다르타가 젊은 시절 왜 출가를 했는지 그 발자취를 따라가는 구도소설로 깊이와 울림이 있다.

불자로 알려진 강수연이 비구니 스님 역할을 맡아 삭발을 강행해 화제를 모았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로는 드물게 동시대의 사건을 다룬 작품이기도 하다. 베트남 전 참전 때 살육의 죄의식으로 승려가 된 아버지. 고등학생 때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아내를 잃은 교사와의 스캔들 등이 그렇다.

불교계의 오랜 쟁점을 다뤄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절에서 수도의 길을 걷고 있는 순녀(강수연)는 중생 속에서 중생과 더불어 불교의 도를 깨달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녀와 대립하는 진성 스님(진영미)은 개인적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화는 진성 스님까지 품고자 하는 순녀를 통해 세속에서 중생과 부대끼며 그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대승적 수행에 초점을 맞췄다.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All That Falls Has Wings·1989)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

강수연 손지창 주연 영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영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이문열 작가의 동명소설을 영화한 작품으로 작가가 직접 각본에 참여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오스트리아의 문인 잉게보르크 바하만(Ingeborg Bachmann)의 시집 제목으로 원제목은 ‘Das Spiel ist aus’(유희는 끝났다)이다.

<밤의 열기 속으로>(1985)로 대종상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장길수 감독은 이 영화로 감독상까지 움켜쥐었다. 장 감독은 이후 <웨스턴 애비뉴>(1993)로 강수연과 한 번 더 호흡을 맞췄다. 최진실이 주연을 맡은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두 작품의 감독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대학 시절의 첫사랑과 재회하지만 결국 자유분방한 그녀를 살해하고 마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운명이 엇갈린 사랑이다. 명문대 법대에 합격해 고시 준비를 하던 형빈(손창민)은 여대생 서윤주(강수연)를 만나 사랑하게 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윤주는 미국으로 떠난다.

대학 졸업후 대기업에 입사한 형빈은 결혼을 했지만 만족스럽지 않다. 미국 지사 파견 근무를 지원해 윤주를 찾아 나서고 우여곡절 끝에 재회해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향락에 젖어 있던 윤주가 외도를 하자 권총으로 그녀를 죽이고 만다. 사랑하면서 미워하는 애증의 감정이 팽팽한 긴장감으로 잘 묘사됐다.

■ 경마장 가는 길 (Road to the Racetrack·1991)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강수연 문성근 주연 영화 <경마장 가는 길>
영화 <경마장 가는 길>

하일지 작가의 등단작인 동명의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1990)으로 주목받은 장선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장 감독은 <화엄경>(1993)으로 대종상영화제 감독상,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로 청룡영화상 감독상을 수상했다.

공항을 나서는 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R이 돌아왔다’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프랑스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R(문성근)과 파리에서 동거했던 J(강수연)가 한국에서 재회한 후 벌어진 일련의 스토리를 실험적인 기법으로 다룬다. 영화에서 경마장은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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