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와 요절한 천재가수 김정호의 ‘님’

1985년 개봉한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는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영화다. 이영하·강수연이 주연을 맡은 <우린 지금 제네바로 간다>(1987)로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송영수 감독의 네 번째 작품이다. 송 감독은 1996년 50대 중반 나이에 고혈압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영화 줄거리는 단순하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의 정부로 사는 윤희와 전과자이자 떠돌이 가수인 미스터A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살인이 주요 구성요소다. 당시로서는 다소 ‘과격한’ 내용이기는 했지만 이미 많은 작품이 보여준 ‘상투적’ 전개다.

영화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에서 주인공을 맡은 김진아와 정승호.
영화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에서 주인공을 맡은 김진아와 정승호.

윤희 역을 원로배우 김진규의 딸이자 개성 넘친 연기로 사랑 받은 김진아가 맡았다. 배우 김진아는 2014년 8월 20일 하와이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병인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51세 생일을 2개월 앞 둔 때였다.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남자 주인공 미스터A 역을 맡은 정승호다. 연극배우인 그는 당시 2대 품바로 주목을 받았다.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는 정승호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이제 중견배우로 영화와 TV 드라마 단골손님이 됐지만 이 영화에서 그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같은 연기를 선보인다.

미스터A 정승호가 우시장서 불렀던 김정호의 ‘님’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는 영화보다 노래가 더 유명세를 떨쳤는지도 모른다. 가수 박영민이 부른 노래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는 ‘너를 보면 나는 잠이 와’로 시작하는 재밌는 가사와 함께 정말 잠이 올 듯 몽롱한 분위기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 노래뿐 아니라 OST에 좋은 곡이 많이 담겼다. 특히 권진경이 부른 ‘강변연가’는 오랫동안 애창곡으로 남아있다. 산울림의 김창완은 ‘안녕이란 말은 너무 어려워’ ‘인생가’ 두 곡을 불렀고, 이광조의 ‘사랑하면 모든 것이’도 있다.

김정호의 노래 님이 인상적인 영화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OST.
김정호의 노래 ‘님’이 인상적인 영화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OST.

그런데 영화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를 얘기하면 가수 김정호의 ‘님’이라는 노래가 먼저 떠오른다. 오래 전에 본 영화라 기억이 희미하지만 윤희와 미스터A가 우시장에서 데이트를 할 때 미스터A 정승호가 각설이 타령을 하는 장면, 그 중에서도 ‘님’을 애절하게 부르는 모습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때 기억이 정확한지 여러 방법으로 알아보려고 했지만 확인하지 못했다. 영화를 다시 보는 방법도 못 찾았다. 혹시 기억에 오류가 있다면 누구든지 알려줬으면 고맙겠다.

천재적 재능 다 못 보여주고 세상 떠난 김정호

가수 김정호는 천재적인 재능을 다 보여주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대한민국 요절 가수의 대표격이다. 폐결핵을 앓으면서도 음악 활동을 계속하던 그는 1985년 11월 33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살아생전 정규앨범 5집을 냈다. 1집 ‘이름 모를 소녀’, 2집 ‘하얀 나비’, 3집 ‘빗속을 둘이서’, 4집 ‘세월 그것은 바람’, 그리고 5집 ‘님’. 이외에 옛노래 모음과 컴필레이션 앨범도 여러 장 냈다.

김정호의 목소리에는 가슴 속 깊이 맺힌 슬픔이 배여 있다. 한국의 정서라고 할 수 있는 한(恨)이 느껴진다. 그의 외가가 유명한 국악 집안이라는 점에서 타고 난 것일 수 있다. 어머니는 전남 담양에서 활동한 명창이었다.

정규앨범에서는 ‘님’이 특히 그렇다. 무언가 원망스럽고 안타깝고 슬프다. 소리꾼 장사익의 ‘찔레꽃’과 닮았다. 김정호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 본 가수 윤복희는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참 순수한 청년이고 수줍음이 많은 애였어요.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 가수를 왜 그냥 두었는지 이해가 안 돼요. 우리나라에서 가수를 뽑으라면 전 김정호예요.”

윤복희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개봉한 영화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의 기획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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